30.1.22

안녕 밴쿠버! 그리고 공포의 6일

밴쿠버에 온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장면들이 마치 미국 영화를 보고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처음으로 먹은 음식은 파이브가이즈라는 유명 햄버거집인데 맛을 고사하고 너무나도 비싼 가격에 나는 패티대신 지폐를 씹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파이브가이즈는 자선사업 단체인냥 착한 가격이었다는 것을. 

이곳의 살인적인 외식 물가는 게으른 나를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성실남으로 변모 시켜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니글니글한 서양식 음식에 질려 어제는 한식마트를 가서 5만원치 장을 봤다. 틈새라면에 햇반을 말아 먹고난 후에야 온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해외여행와서도 굳이 고추장을 챙기거나 한식당을 가는 어르신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좋든 싫든 22년간 몸을 담아왔던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를 고춧가루 없이는 살 수 없는 족쇄를 달아놨던 것임을 멀고 먼 이국땅에서 깨달았다. 

다운타운도 활기차게 돌아다녀 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도 영 시원찮은 것은.. 아직까지 집을 못 구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가히 공포의 6일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수많은 이메일과 문자, 그리고 돌아오는 성의없는 답변들과 속이 뻔히 보이는 스캠문자(스캠러)들이 나를 괴롭혔다. 

처음으로 방을 보러가는 첫 번째 집 그집의 이름은 800이다. 이유인 즉 한달에 월세가 800달러이기 때문. 다운타운 기준 동쪽에 위치해 있는 그곳에 가는데 정말이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고 처음으로 탑승한 캐나다 버스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나에게 맥주를 권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800집에 도착했다. 그 집의 배란다에는 중년 남성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친절히 인사하며 내게 일본에서 왔는지, 한국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이후 굉장히 노쇠해 보이는 주인 할머니가 내려와 방을 보여주는데 가는 길이 꽤 쌔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거실.... 만져보지 않아도 그곳이 얼마나 축축한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나의 방을 볼 차례. 심장이 뛴다. 방 문 아래에는 왜인지 모를 수건들이 문틈을 막고있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적잖이 당황해 하시며 문을 열었다. 아뿔싸.... 이건 마치 훈련소 행군코스에 있는 방치된 화장실과 같았다. 나를 맞이하는 수많은 초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살기위한 나의 뇌는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균형을 되찾았다. 
김승옥 작가님의 '차나 한잔'에서 나올법한 대사를 나는 할머니에게 했다. "오 집 멋지네요! 일단 생각해보고 꼭 연락드릴게요!" 개뿔... 다시는 동쪽 오지 않으리... 절대로.... 

빠르게 다음 집으로 향했다. 다음은 900집이었다. 800집으로 인해 방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바닥에 있어서 제발 벌래만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방 주인은 아시안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집은 굉장히 훌륭했다. 주택가도 매우 청결하고 정갈했기에 계약 바로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내가 들어갈 방의 주인이 2월 12일에 일본에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난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요 며칠동안 선별해서 고르고 고른 곳이 이 두곳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또 다음 집을 찾아야 하나 매우  불안했다. 이후 매일을 수십통, 문자를 수십통 보내고 나는 결국 믿을 만한 할아버지를 찾았다. 지금까지 나의 영어실력에 매우감탄하며 파파고의 도움없이 내 힘으로 집계약을 따냈다. 

마냥 여행온 기분은 첫날을 빼고 느끼지 못했다. 지금 나는 매우 심심하고 한식이 먹고싶고 외롭다.

빨리 학원도 가고 이사도 가고싶다. 

공포의 6일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조금은 편한 마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