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자 신체검사 때문에 서울에 올라갔다. 나는 병원 문을 열기 전 부터 이미 긴장해 있었는데, 이유는 채혈검사 때문이었다. 병원에 들어가 접수를 하고 나서 부터는 손에 계속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순서상 채혈검사는 마지막에 위치해있어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었다.
결국엔 그 순간이 왔다. 피를 뽑으면 항상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말했다. "누워서 뽑아도 될까요?" 간호사분은 아주 친절하시게도 침대가 있는 방으로 옮겨주셨고, 나는 발끝을 세우고 눈을 질끈 감은채로 도축 당하는 소의 심정을 한껏 느꼈다.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었지만 실상 별거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지만, 손에 난 땀이 무색할정도로 귀여운 통증이었다. 내 생각인데 간호사 분이 블라디미르 수준의 피 뽑기 장인임이 틀림없다.
병원을 나오니 오후 3시 반 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던 터라 근처 국밥집을 들렸다. 부산 할머니 국밥이라는 식당이름과는 다르게 매우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모름지기 국밥집의 인테리어가 후질 수록 국밥의 맛은 올라가는 법. 때문에 국밥집을 고를 땐 지저분한 인테리어를 찾아다닌다. 여튼 깔끔한 인테리어에 걸맞게 적은 양과... 대기업의 국밥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배를 따닷하게 댑히고, 천안으로 갈까 서울 구경을 더 할까 고민했다. 집에 들어가도 막상 누워서 유튜브만 볼 걸 생각하니 운동겸 가로수길로 향했다. 천안의 버스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힙스터 전략을 가지고있다. 정류장에서 손님이 직접 나와 손을 흔들지 않으면 절대 멈추지 않는 무소의 뿔 같은 시스템은 천안 버스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런 서부시대 버스환경에서 길러진 나는 서울의 신사적인 버스 앞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몬스 침대 같은 안락함! 급정거가 없는 버스라니? 서울 기사님들은 필히 인성테스트 10점만점에 10점일 듯 하다.
2018년도 가로수길에서 알바를 했을 때 이후로 혼자 온 것은 처음이다. 이미 둘러볼 것은 다 둘러봐서 엑기스 편집샵들만 골라 다녀봤다. 드럽게 비싸기만 하고 살 껀 없었다. 괜히 헛걸음질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방의 안락한 침대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여튼 밖에 있으면 돈만 무지막지하게 깨지니까, 방 안에서 유튜브나 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