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1)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뉴욕편을 참고하며(어쩌면 맹신) 무작정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흑인음식 전문점 실비아도 그 중 하나였는데 듣기로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가게로 통한단다. 아무래도 무섭다고 소문난 할렘에 위치해 있어서 원래 저녁 먹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문했다.워낙 유명한 가게인 만큼 웨이팅이 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기다림이라고는 카운터에서 서버를 기다리는게 전부였다. 서버가 우리에게 오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들을 관찰 했는데, 미국에서 이름 좀 날린 흑인들은 전부 여기 액자에 담겨있는 듯 했다. 스티비 원더, 우탱클랜, 제이지, 한때는 세계 꼭대기 권력에 있었던 버락 오바마까지 나는 밥을 먹기도 전인데 벌써 배가 부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막상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백종원이 시켰던 음식이 뭐였는지 몰라 방황했다. 결국엔 유튜브에 있는 ‘뉴욕편’ 영상을 직원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식품학을 공부하는 나의 식품에 대한 무지와, 영어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내가 주문한 메뉴는 치킨 하나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사이드를 2개 고르는 식이었다. 안 그래도 메뉴 하나 고르기도 어려웠는데 마치 문제속의 문제, 코너속의 코너였다. 나는 맥 앤 치즈 마카로니와 매쉬드 포테이토와 콜라를 사이드로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 미국의 푸짐함에 한 껏 놀랐다(물론 가격도 그렇다). 한국의 푸짐함이란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 정도 였다. 여하튼 친구와 나는 꽤나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와중 할렘 지역 짬밥 5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흑인 할머니 두분이서 옆테이블에 앉으셨다. 그들은 일전의 나와 친구와는 달리 큰 고민없이 메뉴를 골랐고 유려한 흑인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사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나는 나의 메뉴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유인즉 영상에서 나온 백종원이 주문한 사이드 메뉴와 내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지리 할머니의 음식이 나오고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백종원이 주문한 그 초록색 풀떼기다(정확한 이름은 까먹어서 영상을 참고하길 바람)!
그래 이곳은 뉴욕이다. 한국이 아니다. 뉴욕에서는 그 어떤 낯선이와도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굳게 믿었고 실행에 옮겼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저 사실 저 초록색 풀떼기를 먹고싶었거든요 근데 이름을 몰라서 주문을 못 했었어요. 혹시 한입만 주실 수 있나요?” 옆의 할머니는 마치 내가 그말을 꺼내기를 예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셨다. “yes, sure! how much do you want it?” 할머니는 포크로 초록색 풀떼기를 한움큼 집으셨고 나의 접시로 친절히 옮겨주셨다. 그리고 방금 줬던 양 만큼 한번 더 주시려는 액션을 취하자 순간적으로 나는 한사코 말했다. “oh that’s perfect, enough for me thanks you tho”
내가 그 초록색 풀떼기를 넘겨 받았을 때, 내 접시엔 단백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어마무시한 양의 먀카로니와 풀떼기만 존재했다(도대체 어떻게 미국인들은 이 느끼하고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마카로니를 한번의 식사분량으로 먹을 수 있는지 난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예상한 풀떼기의 맛은 약간 피클같은 청량한 맛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완전 반대되는 맛이 그 당시 내 혀에 얻어져 있었다. 마치 굉장히 동양적인 맛? 뭔든지 fancy한 미국에 이런 구수한 맛이 있었다고? 나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초록색 풀떼기는 내 입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엄청 맛있다고 다음에 또 먹고싶다고 할머니들에게 하얀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할머니들과 우리는 부쩍 친해졌고 급기야 서버 까지도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한국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들, 나는 이때 BTS로부터 출발한 급격히 상승된 한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우리의 질문차례가 왔다. 실비아에 왔을 때 이미 뉴욕에서 먹어야 할 소위 ‘must eat’ 음식들을 클리어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치즈 케이크와 자잘한 몇가지였다. 그래서 난 치즈 케이크 맛집과 뉴욕에서 해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할머니는 몇몇 치즈 케이크 가게 이름을 알려주면서 이어 ‘Hop-on, hop-off’ 버스를 추천해주셨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지만 나는 일전에 ‘hop-on, hop-off’ 버스는 거동이 불편해진 어르신들에게 어울리고 나같은 젊은 이는 패기와 쌩쌩한 다리를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소리친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할머니들에게 ‘꼭 타볼게요!’하며 하얀 거짓말을 해야했다.
서버는 나에게 한국말로 ‘Thank you’가 뭔지 물어봤다. “It’s called in Koera, 감사합니다. but usually we just say “땡큐”. 가게에 손님이 세 테이블 정도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더니 다같이 웃음 바다를 만들었다. 어떤 점이 웃음 포인트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웃기게 했다면 그걸로 그만 아니겠는가.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오래만에 의례 주는 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팁을 서버에게 주었다. 할머니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계산을 하며 나오는 길은 내게 꽤 고역이었다. 가게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들, 그리고 그 액자들의 주인공들 중 다수가 나의 영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말했던 그분들을 차처하고서라도, 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는 것 처럼 그 액자들에 또한번 매료됐다. 나는 직원에게 비기 스몰즈도 여기에 왔냐고 물어보았다. 직원은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있다고 나에게 확신에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사람은 뚱뚱한 비기 스물즈가 아니고, 심지어 이름도 비기 스몰즈가 아닌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난 그 직원의 작지 않은 정성에 감동했다. 그때 난 내 발음이 구려서 잘 못 알아 들으신 건가 했는데, 그냥 비기 스몰즈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여하튼 이 가게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쏟아내고, 해소를 시킨뒤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온 나의 손에는 ‘실비아’가 적힌 하얀색 비닐봉투가 들여있었다. 나는 사실 남은 음식을 집에서 먹지 않을 걸 알기에 포장해오고 싶진 않았지만, 직원이 나에게 남은 음식을 싸갈 거 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살짝 싸해지는 분위기를 느끼고 바로 대답을 바꿨다. 그래 나는 어쩌면 무례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부대찌개 역사 처럼, 가난 하고 배고팠던 그 시절의 뿌리를 둔 흑인음식을 버린다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숙소에 와서 그 음식들을 먹기에는 상태가 많이 변해있었다.
밥을 먹고 나니 해가 질 무렵이었다. 여기는 할렘이고 우리는 ‘어두운’ 할렘에 조금은 겁을 먹어 집으로 빠르게 향했다. 어쩌면 뉴욕에서의 식사는 같이 온 일행끼리 만의 식사는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그 점은 뉴욕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나를 이끌었다. 그것이 내가 실비아에서 느낀 뉴욕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