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마이클이다. 보통 외국 이름들은 한국의 이름과 공식이 달라 외우기 쉽지 않은데, 내가 살고있는 집 주인 이름 또한 마이클이어서 그런지 그의 이름을 한 번 듣고 외울 수 있었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난 항상 반대편 창문의 굳게 닫힌 커튼만 볼 수 있었다. 한달이 조금 안 지나서였나?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무언가가 세차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흔들림의 정체가 바로 마이클이었다. 외국에 왔으니 영어를 써 먹어 봐야한다는 강박에 자연스레 인사를 했는데, 그는 항상 내가 인사를 건넬 때 마다 짧게 “Hi”하고는 창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나는 그런 일련의 행동들에 은근히 상처를 받았다. 어느날 그가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완전히 위로 말아올렸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벼운 ‘Hi’ 보다는 조금 더 친근하고 다음 문장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how’s it going?’을 선택해 그에게 넘겨 주었다. 그때 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고 10미터도 안 되는 창문과 창문사이의 거리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마냥 차가운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나의 자그마한 상처들을 지울 수 있었다.
그가 UBC를 막 졸업했다는 사실 말고는 그에 대해 크게 아는 것이 없다. 그는 전형적인 서양 너드 스타일의 남자 처럼 비춰졌고, 나도 사실 너드 유형에 발을 담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던 그 시기에 그도 항상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으니, 둘다 밖에 안 나가는 집돌이인 것은 굳이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어느 오후에 신나게 헤드뱅잉을 하는 그 모습을 보고있었는데, 이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삭발은 한 것이다. 뭐 외국에서 삭발은 꽤나 대중적인 헤어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머리길이를 유지하던 사람이 삭발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싶게한다.
머리보단 입이 앞섰다. “머리 왜 자른 거야?”. 이후에 들려온 답은 내가 예상한 대답과 노선이 달랐다. “파일럿 준비해”. 사뭇 충격이었고 삭발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레 파일럿으로 넘어갔다. 그의 영어발음은 너무나도 로컬이어서 역설적으로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고, 나의 듣기 능력 또한 좋지 않아서(그의 발음이 유독 듣기 어렵다는 것 또한 정말 사실이다) 나는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궁금증을 저기 뒷 편으로 남겨두었다. 여하튼 그가 파일럿을 준비한다는 사실은 너드 이미지인 그와 너무도 상반되어서 그를 조금은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몇 달 내로 파일럿 준비를 하러간다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계속 방에만 있는 그를 보면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새끼 구라쳤나? 하지만 뭐 파일럿이 되든 초밥장인이 되던 뭐가 중요한가? 그는 나에게 ‘정말 캐나다 현지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아주 가끔 런닝) 왜 그런 곳에 있지 하는 곳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그럴 때면 그는 되게 바보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이국 땅에서 길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치 내가 이곳의 오래된 주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짜릿했다. 전에 언급했듯 그의 영어발음은 내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 베베 꼬여있어서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의 헤드뱅잉과 멍한 표정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다.
아마 이런 마이클과 난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몇 번 더 마주칠 것이고 오후 3시 쯤 시작되는 그의 헤드뱅잉을 한 100여번 정도 보고 나면 난 이제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듯 하다.
내가 그를 이렇게 생각하듯, 그도 나를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 온 머리긴 이상한 동양인 한명, 새벽 4시까지 노래를 듣고, 날마다 끔찍한 목소리와 함께 기타를 치는 이상한 너드로 말이다. 그래도 말이야, 있잖아, 귀여운 내 고양이가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건내던 내가 그리워 질 거야 분명.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또 머리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