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삼겹살을 먹고 집에 들어와 곧 바로 곯아 떨어지는 바람에 세탁기 돌려놨던 옷들을 깜빡했다.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은데 그게 너무 오래되다 보면 바쁘게 사는 것 만큼 피곤하다. 내가 꿈꾸는 건 샌프란시스코에 히피였는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홈리스가 된 것 같은... 그러기엔 너무 배때기에 기름이 가득하지만.
어떤 노래들은 마치 사진을 찍듯이 특정 순간을 그대로 담아낸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됐을 때 마치 일기장을 펼친 것 처럼 그때의 기억들이 올라오곤 한다. 그때의 감정, 풍경 심지어는 냄새까지 생생한 경우도 있다.
오아시스의 married with children이 내게는 그런 노래 중 하나다. 고생 많던 군대 이등병 시절, KCTC라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 듣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육체적으로 무엇보다 심적으로 서러웠던 그때에 가사 중 "goodbye i'm going home"이라는 가사가 그냥 그렇게 피부로 와 닿았다. 집이 너무 가고 싶었으니까.
어떤 한 노래를 사진 처럼 기억에 남기는데 있어 가사와 멜로디가 큰 역할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저 노래도 가사 전체적으로 보면 여자친구와 대판 싸우고 삐져서 집에 가겠다, 뭐 그런 내용이다. 단지 저 구절 하나만 그때 내 마음을 그렇게 울렸을 뿐이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들은 수많은 기억들을 머금고 있다. 그 중 혁오의 Goodbye Soeul은 가사라던지 멜로디라던지 모든 부분에 있어 당시에 내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지금 있는 곳이 너무 지겨워 떠나고 싶지만, 결국에 떠났을 때 다시 그리워 할 거 같은 복잡한 애증이 담긴 곡이다.
이 곡에 관해선 크게 3가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기억들은 마치 컴퓨터를 업데이트 하는 것과 같아서 그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이 덮어지고 또 덮어지고 하며 이전 기억들은 조금씩 옅어진다.
첫 번째 기억은 친구와 같이 신림동에서 자취를 했을 때다. 4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친구랑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며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막상 이삿짐을 잔뜩 싸들고 떠나는 날이 됐을 때는, 매일 산책했던 그 길들이 더 이상 산책길이 아니라 이제는 볼 일 없는 출구가 된 것 같았다. 천안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 노래가 우연히 나왔고 그렇게 하나의 사진으로 내게 남겨졌다.
두 번째 기억은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Two years enough to cut this shit?" 군생활도 대략 2년 남짓한 시간이어서 부대에서 나는 항상 이 가사를 들을 때 마다 '그래 언젠간 집에 가겠지' 하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끔찍하게도 떠나고 싶던 군대를 막상 떠나게 됐을 때,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는 너무 슬펐다. 앞서 신림동은 다시 갈 수라도 있지만 부대는 영영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과 앞으로 정 들었던 군대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역의 기쁨을 훨씬 앞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년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그 구절보다는 'i'll miss you'라는 구절이 나를 더 크게 흔들어 놓았다. 정말 떠나고 싶지만 동시에 떠나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은, 아마도 혁오의 의도가 정확히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장 최신 기억은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길. 앞서 말한 기억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나는 이곳을 정말 떠나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참 많은 것을 두고 떠나기란 쉽지 않았다. 푼수같게도 나는 이 노래를 공항가는 택시 안에서 들으며 택시기사에게 들킬는게 부끄러워 조금씩 눈물을 훔쳤다. 뭐, 물론 여자친구 얼굴을 보러가는 길이긴 했지만 너무 정든 곳을 떠난 다는 건 뭐가 됐든 슬펐다.
앞으로 Goodbye Seoul에는 새로운 기억들이 계속해서 덮여질 것이다. 그리고 앞에 기억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희미해지겠지.
이렇게 기억을 진하게 담고 있는 곡들은 곡의 퀄리티를 떠나 내게는 하염없이 최고의 노래들이다. 그리고 이런 노래들이 쌓일 때마다 지나왔던 시간들이 한층 더 풍부해진다. 앞으로 어떤 노래들이 어떤 기억을 담을지가 기대된다. 그게 행복한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내게는 참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