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여름방학 대학교 1학년
학기를 끝내고 나는 서울로 올라와 신림동 원룸방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와 두어달 간을 함께 같이 보냈다. 그 당시 나에게 군복무는 족쇄이기도 하면서 분명히 사용기한은 정해져 있지만 뒷일 생각할 필요없이 젊음을 한 껏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강남역 바로 옆에 있는 해커스 토익학원을 다닌 다는 대의명분으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 서울에서 알바를 하고 싶었는데, 움직이는 것은 또 죽기만큼 싫어하는 나는 집에서 몇키로 떨어져 있지 않은 식당들의 공고에 문자를 날려보곤 했다. 친구가 전에 일하던 두끼 알바 면접을 마지막으로 난 신림동 근처에서 알바 찾기를 그만두었다. 모든 알바자리에 대기명단이 있었고, 자그마한 칼국수집 서빙으로는 경력직만 쓴 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나거나 풀이 죽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신림동은 분명 서울이지만 내가 에전부터 상상하던 이상적인 서울의 모습은 아니었고, 쉽게 말해 전국 어디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무언가 조금은 노후되고 시장터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한창 인기있던 유튜브 채널 와썹맨을 보고있었다. 마침 혁오가 그 채널에 출연했는데, 나는 그 영상을 보고 한번도 없는 가로수길에 대한 동정을 품게되었다. 나는 곧장 알바몬에 들어가 가로수길에 있는 알바 자리를 샅샅이 뒤졌다. 세련된 거리에서 일한다는 부푼 마음과 혹시나 한번 쯤은 그곳에서 혁오를 만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2018년 당시 최저시급은 7000원대 중반 정도였지만 내 눈에 들어온 공고모집에는 9000원이라는 꽤 높은 시급이 적혀있었다. 떨리지만 무언가 될 것 같은 느낌에 지원서를 보냈고 다음날 면접을 보러갔다. 늘 그렇듯 항상 내겐 필살기 같은 옷들이 있었는데, 면접에서 붙고싶은 마음에 난 슬랙스에 블레이저를 갖추어 입고 그 가게로 향했다.
가로수길은 강남역 근처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고 천안에서 온 촌뜨기 스무살은 그 거리에 한번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합격했다. 내 전공과 이 알바의 교집합을 끊임없이 설명해온 나에게 설득 됐을지 아니면 너무나도 많은 알바생들의 도주에 지친 그 실장의 귀찮음을 이겨내지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번듯한 레스토랑에(물론 주방이지만)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서 내가 일한다니, 몸은 고되었지만 이 거리에서 뿜어지는 매력에 난 오늘 불 앞에서 땀을 몇 방울이나 흘렸는지 셀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노동하진 않았다. 토요일, 일요일만 출근했고 아침 8시 무렵에 출근해 저녁 8시 무렵에 퇴근하는 패턴이었다.
덕분엔 주말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직 나를 위한 자유시간이었고 난 한 없이 그 시간들을 자연속으로 되돌려 주었다. 오후 1시에 일어나는 것은 기본 소양이었고 라면을 끓려면 한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하는 가스렌지 덕택에 습관적 외식을 하곤 했다. 나는 돈을 물 쓰듯 썻지만 왜인지 항상 통장에는 여유분이 남아있었다(부모님 감사합니다).
내가 첫 출근을 했을 때 그 가게의 실장님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 교육을 해주었고, 그것도 무지 빡세게, 의례 그렇듯 처음왔을 때 흥미가 돋을 법한 가계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말해주었다. 대부분은 까먹었는데 아직 하나 기억나는 건 고양이 인형을 어깨에 매달고 오는 단골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손님이 낸시랭이 라는 연예인 아닌 연예인 이라는 별 것 아닌 사실 뿐. 난 속으로 낸시랭 말고 혁오가 여기의 단골이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난 한번도 낸시랭을 가게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 평일 단골이었나 보지.
가는 길은 그리 가깝지도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다. 도중에 2호선에서 3호선으로 한 번 환승을 해야하지만, 난 그 사이에 서울에서 청춘을 갈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기에 썩 지루한 출퇴근 길은 아니었다. 알바를 끝내고 식당에서 나올 때면 난 곧장 집으로 향하기 보다는 가로수길 주위를 정처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그 사이 꽤 많은 옷들을 입어봤고 팬시한 가게들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나의 옷차림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지금도 잘 입는 다 자신있게 말 할 순 없지만) 그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싶은 마음이다.
더 많은 얘기가 머리속에 아직 있지만 정리가 안 됐고 귀찮으니 다음에 이어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