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22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때는 2020년 6월, 나는 상황병으로써 지통실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보통 할 일이 없는 야간시간대를 제외하고는 지통실의 티비 채널은 항상 YTN으로 고정된다. 

 난 근무시간 대에 해야하는 체크리스트를 마치고 인트라넷을 끄적 거리고 있었는데, 같이 근무하던 당직사령이 갑자기 ‘헉’ 하는 소리를 내는게 아닌가. 

 그날의 당직사령은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군수과장이었기에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는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군수과장은 말 없이 티비를 가르켰다. 티비에서는 북한에 의한 남북공동연락소 폭파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때만 해도 아무 생각없었는데 이어지는 당직사령의 말에 나도 다시 이문제를 돌아보게 됐다. 당직사령 왈, “아니,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 그것도 지통실에 앉아 있는데 이 소식을 군에서 알기 전에 YTN을 통해서 먼저 전해듣는다는 게, 참, 이게 군대냐? 도대체가 어떻게 돼 먹은 것이, 군통신 보다 일개 방송국이 더 정확한 거야?”

 그 뉴스가 나오고 수분이 지나 군연락망을 통해 벌써 전국민이 다 들었을 소식을 마치 갓 나온 소식인 것 마냥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래 우리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발’ 보단 티비뉴스 보다 느려터진 군체계의 무능함에 초점을 뒀다. 초점의 이유는 워낙 끊임없이 기행을 벌여온 북한 때문에 만들어진  안전불감증, 아니면 지금까지 쌓여온 우리 군대를 향한 정말 순수한 의문, ‘이대로 우리가 정말 전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때문일 수도 있겠다. 

Ps. 지통실에는 북한군 소식을 급히 전달 받을 수 있는 통신기기가 있다. 나는 이 기기를 통해 소식이 들려오면 발 빠르게 방산업체 주식을 사들이고 후에 뉴스에 나와 방산업체 주가가 오를 때 팔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아이디어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발칙이 끔찍이 되기 전에 YTN 보다 무능한 이 기기의 실체를 알았으니 그거 참 다행이다.

 

23.8.22

누가 이기나 함 해보자

 

너넨 이젠 끝이야. 초파리 새끼들아. 

15.8.22

창문 반대편 남자


 그의 이름은 마이클이다. 보통 외국 이름들은 한국의 이름과 공식이 달라 외우기 쉽지 않은데,  내가 살고있는 집 주인 이름 또한 마이클이어서 그런지 그의 이름을 한 번 듣고 외울 수 있었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난 항상 반대편 창문의 굳게 닫힌 커튼만 볼 수 있었다. 한달이 조금 안 지나서였나?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무언가가 세차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흔들림의 정체가 바로 마이클이었다. 외국에 왔으니 영어를 써 먹어 봐야한다는 강박에 자연스레 인사를 했는데, 그는 항상 내가 인사를 건넬 때 마다 짧게 “Hi”하고는 창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나는 그런 일련의 행동들에 은근히 상처를 받았다. 어느날 그가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완전히 위로 말아올렸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벼운 ‘Hi’ 보다는 조금 더 친근하고 다음 문장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how’s it going?’을 선택해 그에게 넘겨 주었다. 그때 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고 10미터도 안 되는 창문과 창문사이의 거리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마냥 차가운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나의 자그마한 상처들을 지울 수 있었다.


 그가 UBC를 막 졸업했다는 사실 말고는 그에 대해 크게 아는 것이 없다. 그는 전형적인 서양 너드 스타일의 남자 처럼 비춰졌고, 나도 사실 너드 유형에 발을 담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던 그 시기에 그도 항상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으니, 둘다 밖에 안 나가는 집돌이인 것은 굳이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어느 오후에 신나게 헤드뱅잉을 하는 그 모습을 보고있었는데, 이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삭발은 한 것이다. 뭐 외국에서 삭발은 꽤나 대중적인 헤어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머리길이를 유지하던 사람이 삭발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싶게한다.


 머리보단 입이 앞섰다. “머리 왜 자른 거야?”. 이후에 들려온 답은 내가 예상한 대답과 노선이 달랐다. “파일럿 준비해”. 사뭇 충격이었고 삭발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레 파일럿으로 넘어갔다. 그의 영어발음은 너무나도 로컬이어서 역설적으로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고, 나의 듣기 능력 또한 좋지 않아서(그의 발음이 유독 듣기 어렵다는 것 또한 정말 사실이다) 나는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궁금증을 저기 뒷 편으로 남겨두었다. 여하튼 그가 파일럿을 준비한다는 사실은 너드 이미지인 그와 너무도 상반되어서 그를 조금은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몇 달 내로 파일럿 준비를 하러간다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계속 방에만 있는 그를 보면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새끼 구라쳤나? 하지만 뭐 파일럿이 되든 초밥장인이 되던 뭐가 중요한가? 그는 나에게 ‘정말 캐나다 현지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아주 가끔 런닝) 왜 그런 곳에 있지 하는 곳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그럴 때면 그는 되게 바보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이국 땅에서 길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치 내가 이곳의 오래된 주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짜릿했다. 전에 언급했듯 그의 영어발음은 내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 베베 꼬여있어서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의 헤드뱅잉과 멍한 표정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다. 


  아마 이런 마이클과 난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몇 번 더  마주칠 것이고 오후 3시 쯤 시작되는 그의 헤드뱅잉을 한 100여번 정도 보고 나면 난 이제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듯 하다. 


 내가 그를 이렇게 생각하듯, 그도 나를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 온 머리긴 이상한 동양인 한명, 새벽 4시까지 노래를 듣고, 날마다 끔찍한 목소리와 함께 기타를 치는 이상한 너드로 말이다. 그래도 말이야, 있잖아, 귀여운 내 고양이가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건내던 내가 그리워 질 거야 분명.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11.8.22

13th street

 13번가를 지날 때 왜 힘들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3333 14번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한국 처럼 편의점이 많지 않은 터라, 보잘 것 없는 음료수 하나 마시기 위해 10번가 까지 굳이 걸어가야 하는 귀찮음이 늘 존재한다. 무슨 텍사스 처럼 차를 타고 가야할 정도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100발 자국만 가도 편의점이 있는 한국과 비교하면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10번가 까지는 걸어서 대충 10분 정도 언저리다. 여기서 문제는 10번가 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14번가 까지 돌아오는 길이다. 그렇지 않나? 산책을 하든 등산을 하든 목표 지점까지 가는 길은 재밌고 신선한데, 막상 돌아오는 길은 숙제 처럼 느껴지는 것. 이 길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10번가를 가는 나의 컨디션은 보통 아침이나 무언가를 하러 갈 때에 놓여있기 때문에 대게 쌩쌩한 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손에 일주일치 음식이 담겨있는 쇼핑백이나,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피곤한 몸뚱아리와 함께 이기 때문에 더욱 버겁게 느껴진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항상 나는 13번가에서 멈춰 선다. 13번가, 그 지점에서 난 항상 이렇게 햇갈리곤 한다. “이제 14번가 인가?”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먼지가 잔뜩 덮힌 표지판 아래로 13번가라는 글씨가 나를 비웃듯이 바라 보고있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룸메들과 같이 집으로 돌아갈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13번가에서 우회전을 하곤한다. 그러고는 몇 발 자국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니 여기 우리 집 아니잖아?” 


 나는 문제에 대해 추상적인 느낌을 접어두고 과학적으로 분석을 해봤다. 원인엔 피곤한 정신도 무거운 짐도 물론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로 길에 미세한 그것도 아주 미세해서 의식적으로 느낄 없는 안되는 경사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물론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없다.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13번가에서 우회전을 했고, 아마 다음 주도 그럴 것이다

5.8.22

뉴욕 할렘, 흑인음식 전문점 실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뉴욕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1)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뉴욕편을 참고하며(어쩌면 맹신) 무작정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흑인음식 전문점 실비아도 그 중 하나였는데 듣기로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가게로 통한단다. 아무래도 무섭다고 소문난 할렘에 위치해 있어서 원래 저녁 먹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문했다.워낙 유명한 가게인 만큼 웨이팅이 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기다림이라고는 카운터에서 서버를 기다리는게 전부였다. 서버가 우리에게 오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들을 관찰 했는데, 미국에서 이름 좀 날린 흑인들은 전부 여기 액자에 담겨있는 듯 했다. 스티비 원더, 우탱클랜, 제이지, 한때는 세계 꼭대기 권력에 있었던 버락 오바마까지 나는 밥을 먹기도 전인데 벌써 배가 부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막상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백종원이 시켰던 음식이 뭐였는지 몰라 방황했다. 결국엔 유튜브에 있는 ‘뉴욕편’ 영상을 직원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식품학을 공부하는 나의 식품에 대한 무지와, 영어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내가 주문한 메뉴는 치킨 하나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사이드를 2개 고르는 식이었다. 안 그래도 메뉴 하나 고르기도 어려웠는데 마치 문제속의 문제, 코너속의 코너였다. 나는 맥 앤 치즈 마카로니와 매쉬드 포테이토와 콜라를 사이드로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 미국의 푸짐함에 한 껏 놀랐다(물론 가격도 그렇다). 한국의 푸짐함이란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 정도 였다. 여하튼 친구와 나는 꽤나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와중 할렘 지역 짬밥 5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흑인 할머니 두분이서 옆테이블에 앉으셨다. 그들은 일전의 나와 친구와는 달리 큰 고민없이 메뉴를 골랐고 유려한 흑인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사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나는 나의 메뉴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유인즉 영상에서 나온 백종원이 주문한 사이드 메뉴와 내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지리 할머니의 음식이 나오고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백종원이 주문한 그 초록색 풀떼기다(정확한 이름은 까먹어서 영상을 참고하길 바람)! 


 그래 이곳은 뉴욕이다. 한국이 아니다. 뉴욕에서는 그 어떤 낯선이와도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굳게 믿었고 실행에 옮겼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저 사실 저 초록색 풀떼기를 먹고싶었거든요 근데 이름을 몰라서 주문을 못 했었어요. 혹시 한입만 주실 수 있나요?” 옆의 할머니는 마치 내가 그말을 꺼내기를 예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셨다. “yes, sure! how much do you want it?” 할머니는 포크로 초록색 풀떼기를 한움큼 집으셨고 나의 접시로 친절히 옮겨주셨다. 그리고 방금 줬던 양 만큼 한번 더 주시려는 액션을 취하자 순간적으로 나는 한사코 말했다. “oh that’s perfect, enough for me thanks you tho”


 내가 그 초록색 풀떼기를 넘겨 받았을 때, 내 접시엔 단백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어마무시한 양의 먀카로니와 풀떼기만 존재했다(도대체 어떻게 미국인들은 이 느끼하고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마카로니를 한번의 식사분량으로 먹을 수 있는지 난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예상한 풀떼기의 맛은 약간 피클같은 청량한 맛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완전 반대되는 맛이 그 당시 내 혀에 얻어져 있었다. 마치 굉장히 동양적인 맛? 뭔든지 fancy한 미국에 이런 구수한 맛이 있었다고? 나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초록색 풀떼기는 내 입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엄청 맛있다고 다음에 또 먹고싶다고 할머니들에게 하얀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할머니들과 우리는 부쩍 친해졌고 급기야 서버 까지도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한국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들, 나는 이때 BTS로부터 출발한 급격히 상승된 한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우리의 질문차례가 왔다. 실비아에 왔을 때 이미 뉴욕에서 먹어야 할 소위 ‘must eat’ 음식들을 클리어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치즈 케이크와 자잘한 몇가지였다. 그래서 난 치즈 케이크 맛집과 뉴욕에서 해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할머니는 몇몇 치즈 케이크 가게 이름을 알려주면서 이어 ‘Hop-on, hop-off’ 버스를 추천해주셨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지만 나는 일전에 ‘hop-on, hop-off’ 버스는 거동이 불편해진 어르신들에게 어울리고 나같은 젊은 이는 패기와 쌩쌩한 다리를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소리친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할머니들에게 ‘꼭 타볼게요!’하며 하얀 거짓말을 해야했다.


 서버는 나에게 한국말로 ‘Thank you’가 뭔지 물어봤다. “It’s called in Koera, 감사합니다. but usually we just say “땡큐”. 가게에 손님이 세 테이블 정도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더니 다같이 웃음 바다를 만들었다. 어떤 점이 웃음 포인트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웃기게 했다면 그걸로 그만 아니겠는가.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오래만에 의례 주는 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팁을 서버에게 주었다. 할머니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계산을 하며 나오는 길은 내게 꽤 고역이었다. 가게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들, 그리고 그 액자들의 주인공들 중 다수가 나의 영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말했던 그분들을 차처하고서라도, 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는 것 처럼 그 액자들에 또한번 매료됐다. 나는 직원에게 비기 스몰즈도 여기에 왔냐고 물어보았다. 직원은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있다고 나에게 확신에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사람은 뚱뚱한 비기 스물즈가 아니고, 심지어 이름도 비기 스몰즈가 아닌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난 그 직원의 작지 않은 정성에 감동했다. 그때 난 내 발음이 구려서 잘 못 알아 들으신 건가 했는데, 그냥 비기 스몰즈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여하튼 이 가게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쏟아내고, 해소를 시킨뒤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온 나의 손에는 ‘실비아’가 적힌 하얀색 비닐봉투가 들여있었다. 나는 사실 남은 음식을 집에서 먹지 않을 걸 알기에 포장해오고 싶진 않았지만, 직원이 나에게 남은 음식을 싸갈 거 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살짝 싸해지는 분위기를 느끼고 바로 대답을 바꿨다. 그래 나는 어쩌면 무례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부대찌개 역사 처럼, 가난 하고 배고팠던 그 시절의 뿌리를 둔 흑인음식을 버린다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숙소에 와서 그 음식들을 먹기에는 상태가 많이 변해있었다. 

 밥을 먹고 나니 해가  무렵이었다여기는 할렘이고 우리는 ‘어두운’ 할렘에 조금은 겁을 먹어 집으로 빠르게 향했다어쩌면 뉴욕에서의 식사는 같이  일행끼리 만의 식사는 아닌  하다그리고  점은 뉴욕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나를 이끌었다그것이 내가 실비아에서 느낀 뉴욕의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