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1

맘마밀과 앱솔루트

 아빠와 아빠의 친한 동생분이 있는 술자리에 함깨 했다. 눈수술 때문에 소주는 한 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사실 딱히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바에야 가서 뭐라도 얘기하고 오자 싶었다, 또 혹시 몰라 가면 용돈이라도 받을지. 

 아빠랑 삼촌은 이미 취기가 오를 때로 올라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외모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형식상 해주는 말임을 알고있음에도 기분은 좋았다. 

 아빠는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를 했다. 아빠의 20대를 대강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빠는 입시시험을 총 3번을 봤다.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이던 시절. 아빠는 재수를 실패하고 할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제 인생에 공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농사 짓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 별로 없는 분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너 알아서 해라, 근데 너가 원한다면 땅을 팔아서라도 지원을 해주겠다". 그렇게 아빠는 삼수를 했다. 삼수째 대학합격 발표, 이미 작은 아빠가 대학합격을 결정지었다. 아직 합격이 확정이 나지 않었던 아빠는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주일간을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간 부자 친구집에서 대학에 대해 생각을 했고, 결국 대학교에 진학하게됐다. 

 엄마는 소개팅으로 만나게 됐다. 아빠는 엄마를 꼬시기 위해 전략을 치밀하게 전략을 세웠다고 했다. 정공법으로 가기에는 꼬시기 어려운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 아빠는 엄마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자기할 말만 하고 간거지. 여기서 엄마의 후일담을 들었다. 그날 아빠가 신나게 혼자 떠드는 것을 듣고는 적어도 밥 굶기진 않겠구나. 그렇게 사귄지 두어달이 채 안돼서 내가 생겼고 엄마랑 아빠는 초고속 결혼을 했다. 

 30대 초반의 우리 집이 어땠는지는 당시 난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듣기로는 돌잔치 때 받았던 예물을 팔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했다. 당시에 내가 먹던 분유는 맘마밀이었다. 그때 아빠의 주변 사람들 중에 돈 좀 번다 싶은 사람들은 앱솔루트라는 더 비싼 분유를 먹였다고 했다. 가격 차이는 구천원정도 .아빠는 앱솔루트를 먹인 다고 자랑했던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가장 저렴한 맘마밀을 먹고자란 내가 가장 건강하게 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아빠는 조금의 분함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앱솔루트를 먹이고 싶음에도 형편이 안 된다는 그런 분함. 아빠의 직업 특성상 식품 제조업자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날은 우연히 앱솔루트 개발자와 만났다고 했다. 그때 아빠는 맘마밀과 앱솔루트의 차이를 물어봤다. 대답은 알러지 반응의 차이 정도고 영양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차이없다고 했다. 그때의 아빠는 어떤 심정으로 그 질문을 했을까?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절박함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7살 차이나는 내 동생이 나왔고, 내 동생은 앱솔루트를 먹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지금 우리 집은 치킨을 일주일에 7번 시켜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 이런 풍족함 속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들. 

 아빠는 공부를 지지리도 안 하는 나를 믿는 다고 하셨다. 근데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훈련소 시절 내가 썼던 편지를 얘기하시며, 아빠는 오늘 눈물을 보이셨다. 너무 놀랐다. 

 아빠는 불같은 성격과 함께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오셨다. 나 같은 겁쟁이들은 절대 걸을 수 없는 그런 길. 

 자신의 20대를 얘기하는 아빠의 눈을 보고선 아직 남아있는 아빠의 청춘을 난 봤다.




10.2.21

학교앞 붕어빵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초등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있다. 나는 꽤 단골이었는데, 미세먼지가 심해지고 머리가 좀 커졌을 때부터 무엇보다 식당 알바를 하고 위생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붕어빵집을 끊었다. 

 초등학생 때는 어묵국물에 모기가 둥둥 떠 있는 걸 보고도 히히 거리면서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위생이었지 싶다. 궁금하다 그래도 10년 정도를 들락날락 했었는데 붕어빵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알까? 난 아주머니의 이목구비가 너무나도 잘 기억난다.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아주머니 세금 내세요. 위생도 신경 써주시구요. 

 추억이 담긴 포장마차. 하지만 보기엔 썩 즐겁진않다.

Sleeptight

이제 빨리 자야되는데 내일 일어나서 급히 할 건 없지만

예전에는 잠만 자는 고양이가 부러웠는데 나 지금 하는 거 보면 고양이랑 별 다를 것도 없다. 



7.2.21

차곡차곡 쌓이는 음악들

 스포티파이로 발견한 다양한 앨범들이 있다. 하트 버튼을 누르면 앨범 목록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 취향에 맞는 앨범들이 차곡차곡 쌓인 목록들을 보면 이 앨범들이 온전히 내 것이 된 거 같고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내 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또 내 삶에 배경음악이 되어줄 앨범을 하나 발견했다. 취향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추가해가는 기분이란.



6.2.21

비문증이냐 눈썹이냐

 라섹을 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만족을 하고있는데, 일주일정도 전부터 그러니까 시력이 0.9 까지 올라왔을 때 내 왼쪽 눈에 검은 실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보호렌즈를 끼고 있을 때에도 보였다. 그때는 그냥 렌즈의 겉면이 보이는 거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렌즈를 끼고있는데 렌즈를 어떻게 보겠어 멍청한 생각이었다. 거슬리긴 해도 렌즈만 빼면 없어지리라 믿었다. 왠걸 렌즈를 빼도 아주 선명하게 검은 실은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엄청나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던 핸드폰을 보던 이 검정색 실이 강박적으로 보이게 됐다. 인터넷에 검색했다. 그랬더니 비문증이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나 라섹을 하고 나면 그 비문증이 눈에 띄게 보인다거나 증가하더란다. 이건 해결방법도 없단다. 익숙해지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없어지길 바라는 수 밖에.. 이 검은 실 하나에 신경이 집중돼서 뭘 하든 쉬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비문증이란걸 안 이후로 눈썹이냐 비문증이냐에 대해 골똘히 생각을 했다. 눈썹일 확률이 70퍼정도 비문증일 확률 30 이라고 생각했다. 비문증 치고는 너무 선명하고 내 눈을 따라 다니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전문가의 소견을 한번 들어보고자 시력검사겸 물어봤다. 당시 나는 너무 절박해서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그... 선생님... 이게 눈썹인지 비문증인지 햇갈려요. 눈을 크게 뜨면 안 보이고요. 그냥 평상시로 뜨면 보이거든요 제 생각엔.. 눈썹...." 의사는 뒤이어 빨리 보내고 싶어하는 표정과 말투로 그냥 흔한 비문증이니 기다리고 익숙해지라고 말했다. 2주후 있을 검사에서 비문증 관련 검사도 진행하니 그때 다시 확인하겠다는 말을 했다. 2주동안 이 짜증나는 검은 실을 달고 살라고? 절망적이었다.

 그래 뭐 어쩌겠어. 비문증이면 손쓸 방법도 없는데.. 무시하고 지내려 해도 이 검은 실이 미친듯이 거슬렸다. 두통이 올 정도로. 안 되겠다. 이게 비문인지 눈썹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눈썹일 수도 있으니까. 잘라내버리자. 거울 앞으로 갔다. 눈을 가리고 있는 눈썹을 2가닥 발견했다. 눈썹 개새끼... 수술한 눈이어서 콧털 가위로 자르기엔 좀 무섭고 핀셋도 없고 결국 손으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하필 3시간 전 손톱을 잘라서 눈썹을 뽑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뭐 어쩌어찌해서 눈썹 2가닥을 다 뽑았다. 삼십분은 족히 지났을 거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뭔지 몰라도 안 보인다. 신난다. 근데 내일 일어났을 때 또 보인다면..... 그땐 정말 모르겠다. 

 비문증인게 나았을까? 아니면 차라리 뽑을 수 있는 눈썹이 나을까? 여하튼 이것만 해결되면 참 만족스러운 라섹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제발 속눈썹아 자라지 마라... 제발....

4.2.21

Hiphop is.....

힙합 청취경력 9년이올시다. 9년동안 수많은 랩음악을 들어왔다. 국힙,외힙을 막론하고 초딩시절 아웃사이더 부터 시작해서 화나, 에미넴, 산이, 이센스, 켄드릭 라마, 칸예 웨스트 등등.

하지만 지금까지도 비기의 랩을 따라잡을 만한 래퍼는 단 한명도 찾을 수가 없다. 90년대에 비기는 이미 랩의 정점을 보여줬다. 켄드릭 라마가 산골짜기에 들어가 몇십년간 랩단련을 한다고해도 비기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 더 엄청난 음악을 들려줬을텐데 단명해서 너무나도 아쉽다. 

현재 모든 래퍼들은 비기가 보여준 리듬과 그루브를 따라 잡기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힙합의 발전이란 비기에게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사가 상당해

혁오와 표절

혁오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막연하게 좋다,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다 혁오의 노래를 싱글에서 앨범 단위로 듣기 시작하면서 혁오 노래 중 몇몇 개들이 표절시비가 걸렸었던 걸 알게됐다. 그당시 매체에서는 장르를 구분짓기 힘든 장르 자체가 혁오인 노래라고 치켜세웠다. 그말에 한없이 공감할 때였었는데 표절시비가 걸린 곡들을 듣고서는 아닐 수 있겠다, 다시 생각했다.

스포티파이를 시작하고 많은 인디락 노래를 접했고, 혁오는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던 장르 중의 몇몇 장르를 차용하고 있는 밴드였을 뿐이었단 걸 알게됐다. 한국에서는 혁오같은 장르의 음악이 당시엔 생소했지만 사실은 밖에선 몇 년전 부터 꾸준히 그것도 인기있게 있어왔던 음악들이었다. 그렇다고 혁오가 싫어지진 않는다. 아직도 내 귀엔 대부분의 인디락 노래 중 혁오의 노래가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