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빠의 친한 동생분이 있는 술자리에 함깨 했다. 눈수술 때문에 소주는 한 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사실 딱히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바에야 가서 뭐라도 얘기하고 오자 싶었다, 또 혹시 몰라 가면 용돈이라도 받을지.
아빠랑 삼촌은 이미 취기가 오를 때로 올라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외모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형식상 해주는 말임을 알고있음에도 기분은 좋았다.
아빠는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를 했다. 아빠의 20대를 대강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빠는 입시시험을 총 3번을 봤다.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이던 시절. 아빠는 재수를 실패하고 할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제 인생에 공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농사 짓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 별로 없는 분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너 알아서 해라, 근데 너가 원한다면 땅을 팔아서라도 지원을 해주겠다". 그렇게 아빠는 삼수를 했다. 삼수째 대학합격 발표, 이미 작은 아빠가 대학합격을 결정지었다. 아직 합격이 확정이 나지 않었던 아빠는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주일간을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간 부자 친구집에서 대학에 대해 생각을 했고, 결국 대학교에 진학하게됐다.
엄마는 소개팅으로 만나게 됐다. 아빠는 엄마를 꼬시기 위해 전략을 치밀하게 전략을 세웠다고 했다. 정공법으로 가기에는 꼬시기 어려운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 아빠는 엄마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자기할 말만 하고 간거지. 여기서 엄마의 후일담을 들었다. 그날 아빠가 신나게 혼자 떠드는 것을 듣고는 적어도 밥 굶기진 않겠구나. 그렇게 사귄지 두어달이 채 안돼서 내가 생겼고 엄마랑 아빠는 초고속 결혼을 했다.
30대 초반의 우리 집이 어땠는지는 당시 난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듣기로는 돌잔치 때 받았던 예물을 팔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했다. 당시에 내가 먹던 분유는 맘마밀이었다. 그때 아빠의 주변 사람들 중에 돈 좀 번다 싶은 사람들은 앱솔루트라는 더 비싼 분유를 먹였다고 했다. 가격 차이는 구천원정도 .아빠는 앱솔루트를 먹인 다고 자랑했던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가장 저렴한 맘마밀을 먹고자란 내가 가장 건강하게 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아빠는 조금의 분함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앱솔루트를 먹이고 싶음에도 형편이 안 된다는 그런 분함. 아빠의 직업 특성상 식품 제조업자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날은 우연히 앱솔루트 개발자와 만났다고 했다. 그때 아빠는 맘마밀과 앱솔루트의 차이를 물어봤다. 대답은 알러지 반응의 차이 정도고 영양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차이없다고 했다. 그때의 아빠는 어떤 심정으로 그 질문을 했을까?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절박함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7살 차이나는 내 동생이 나왔고, 내 동생은 앱솔루트를 먹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지금 우리 집은 치킨을 일주일에 7번 시켜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 이런 풍족함 속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들.
아빠는 공부를 지지리도 안 하는 나를 믿는 다고 하셨다. 근데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훈련소 시절 내가 썼던 편지를 얘기하시며, 아빠는 오늘 눈물을 보이셨다. 너무 놀랐다.
아빠는 불같은 성격과 함께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오셨다. 나 같은 겁쟁이들은 절대 걸을 수 없는 그런 길.
자신의 20대를 얘기하는 아빠의 눈을 보고선 아직 남아있는 아빠의 청춘을 난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