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4

NO JAPAN

 노재팬 운동이 한 번 한국을 덮었던 적이있다. 


그리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병신들'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저질렀던 참혹한 일을 기억하고 있고, 다큐멘터리나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땐 마음이 그렇게 저려올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2024년이다. 여전히 한일 관계가 나쁜 것은 그렇다 치고 일본 정부를 넘어 일본인까지 혐오를 일삼으면서, 최종적으로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국노로 몰아가는 '노재팬 운동'. 


노재팬 운동을 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동물의 숲 신작을 기다리는 그들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내 손가락에게 미안할 정도로 이미 진부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하나의 뒤틀린 이념에 매몰되어서 그 나라의 정부를 포함해, 문화와 사람들까지 금기시하는 것은 히틀러의 파시즘과 무엇이 다를까?


만약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재팬 운동을 수용했던 사람들이라면, 진심으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저 위에서 하는 말이라면 '네, 네, 맞습니다. 옳습니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라면

  나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스토리겠지만 나는 라면을 어렸을 적부터 너무 좋아해서, 라면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고, 놀랍게도 그 꿈이 중학생때부터 스무살까지 이어져 식품학과에 입학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지금은 그 꿈을 두고 수많은 고민들이 있지만 여기서 말할 것은 아니다. 

 최근에 라면을 먹으면서 왠지 모를 역함이 자주 느껴졌는데, 그것은 라면 특유의 밀가루 비린맛이었다. 특히 국물라면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다행이도 볶음면류는 괜찮아서, 짜파게티, 간짬뽕 같은 라면을 굉장히 애용하고 있다. 

 여튼 그 비린맛을 한 번 인지한 뒤로 라면에 대한 나의 애정은 급속도로 식어가기 시작했다. 얼마전 할아버지 제사 때 이모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 주제가 나오게 됐다. 


'이모 저는 이제 라면 김치 없으면 못 먹겠어요. 밀가루 비린맛이 너무 나더라구요'

이모는 한참을 웃으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그게 너가 늙고 있다는 증거야'  

클론

 한 때 클론룩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마냥 쓰였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가 아마 내가 중학교 시절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무튼 그즈음이었다. 검은색 슬랙스에 하얀색 상의를 입은 사람들을 속칭 '모나미룩'으로 불리곤 했는데, 패션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도 모두 바가지머리여서 많은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었다. 그때가 그 단어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뭐 어쨌든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니다 보면(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는 솔직히 말하면 '스타일'이라는 이름을 붙히기가 힘들정도로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요즘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혹은 조금 더 깊게 들어가 특정 스타일을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서 유행하는 옷들을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2010년도에 비해 한국 패션의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만한 점은, 10년대에는 특정 아이템을 중심으로 유행이 돌고 돌았다면, 최근에는 스타일 혹은 장르라는 조금 더 넓은 카테고리로서의 유행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클론룩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더 나아가 일종의 코스프레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나의 고질병 중 하나인 이 병신같은 힙스터 마인드를 버리려고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패션에 그렇게 진심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로, 생각을 좀 고쳐 먹었다. 시발 뭐 클론룩이면 좀 어때? 남들이랑 다른 옷을 찾으려면 저기 저 바다건너에 있는 해외 편집샵에서 그 귀찮은 직구 과정을 거치거나, 빈티지샵을 샃샃이 뒤져가며 콧구멍에 먼지 뭍혀가면서 옷을 골라야 하는데, 이 과정을 즐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물며 SPA브랜드를 애용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수가 있을까. 그들이야 말로 경제적, 실용적 측면에서의 의식주를 현명하게 해내고 있는 21세기의 참 소비자인 것을.


'저건 좀 클론룩인데 부끄럽지도 않니?' 

우스깡스러운 나의 옷차림을 보고서는 현명한 SPA브랜드의 소비자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서 넌 뭔데 병신 백수새끼야. 좆도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난 할 말을 잃는다.

사실 사람이란 것이 대강 비슷비슷해서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한 겨울에 발목을 훤하게 드러내는 그것만은 정말이지 내 눈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법으로 금지시켜줬으면 한다. 


9.1.24

발목

 한 겨울에도 발목을 훤하게 드러내려 페이크 삭스에 복숭아뼈에서 꼭 정지해야만 하는 애매한 기장의 바지를 입은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 도대체 이 발목 패션과 인성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길래, 발목이 보이는 사람들은 다 병신인 걸까? 오늘도 의문 속에 샤워를 하러간다. 


그들의 패션감각에 깊은 애도를

도서관

우리 학교 도서관은 그렇다. 

'아니 이 책이 없다고?' 하다가도 

'아니 이 책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아니 이 책이 있다고?'가 느껴지는 순간의 그 짜릿함은 어찌 설명하리. 

그렇게 내리 6권을 빌려 책가방을 축 늘어트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취방엘 간다. 

그리고 각 10페이지 정도 읽고 나서는 반납까지 2주를 그 존재에 대해 완벽히 까먹고선

연체가 될랑말랑한 그 시점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에 간다.


그러고서는 생각한다. 

'다음엔 한 번에 한 권씩만 빌리자...'


하지만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들의 이름을 보고있자면, 도저히 그 자극적인 이름들을 지나칠 수가 없다. 내가 최근에 봤던 가장 자극적인 제목은 '담배는 숭고하다'였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러고서는 6권을 또 빌렸다. 물론 읽지 않았다.


방학이지만서도 내일 도서관에나 가야지. 

우디앨런 인터뷰 모음집을 봐야한다. 


도서관에 가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다.   

7.1.24

인생 앨범

밤에 잠도 안 오고 책도 몇 페이지 읽다가 덮고, 침대에서 이 앨범을 재생했다. 

내 인생 앨범은 아무래도 이 앨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블로거를 열었다. 

힙합이고 알앤비고 락이고 뭐고 그냥 이 앨범이 최고로 좋다.

'검정치마는 너무 메인스트림 아닌가요... 진부한데..'

'저는 마일드 데이비스, 비치 보이스 자주 듣고요. 갓스피드유도 참 좋죠 즐겨들어요'

이런 같잖은 음악 부심과 힙스터 마인드고 어쩌고 

실험적이고 기교가 어떻고 이 앨범 앞에선 그냥 무의미하다. 

너무 좋다. 내 모든 취향이 집약되어 들어가 있는 앨범.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곡들이 나의 이야기였으면 좋겠고, 절실히 공감됐으면 하고, 몇 곡은 실제로 그렇고. 취미로 노래를 만든다고 떠들고 다니곤 하는데 어쩌면 나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이런 앨범이 세상에 또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곡 하나하나에 떠오르는 각각의 추억들을 하나씩 머금고 있어서 이 앨범을 한번 훑으면 마치 일기장을 열어보는 것 같다. 




6.1.24

산책

  22년 밴쿠버에 있을 때 얘기다. 주말에 룸메이트도 없고 나 홀로 따분한 오후였다. 따분한 낮에 레몬을 좀 넣은 술을 잔뜩 들이마시고는 신발을 싣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이라는게 뭐, 대강 비슷하겠지만 목적지는 없고 그냥 발 닿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귀에 꽂은 에어팟에는 노래가 미친듯이 큰 소리로 나오고 있었고 내 산책 경로와 속도는 내 플레이스트에 들어있던 랜덤하게 많은 곡들에 의해 바뀌어갔다. 그때 마침 내가 빠져 있던 Cal Tjader의 'Agua Dulce'라는 앨범이 재생됐고 산책 중에 점점 올라온 취기는 이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올라왔다.  

 이 앨범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재즈한 무언가와 사이키델릭한 무언가 그리고 아프리카 부족 음악 같은 요소들이 한대 뒤섞여 정신없는 차분함이라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난 말 그대로 길을 잃었다. 분명히 수백번도 더 왔다갔다 한 길이었는데 도저히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이 앨범은 고막이 찢어져라 연주되면서 정신을 어지럽혔고 나는 순간 정글에 갇혀 길을 해매는 타잔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우면서도 흥분됐다. 발을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땅이 꺼져 가는 느낌도 그렇고, 내가 의도한 발걸음 만큼 보다 훨씬 더 내 발은 앞으로 나가있는 이상한 감각도 그렇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앨범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더는 이대로 해매면 안되겠다 싶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열었다. 지도를 열자 나는 참 웃기게도 내가 집주변을 계속해서 돌고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 근처에 양 모양 동상 비슷한게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진짜 처럼 보인던지.   

 다행이도 내가 살던 동네는 굉장히 조용한 동네여서, 내가 푼수같이 해매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